[마을기행] 숲 속을 휘돌아가는 바람소리 월각산을 넘어오고
[마을기행] 숲 속을 휘돌아가는 바람소리 월각산을 넘어오고
  • 김응곤 기자
  • 승인 2009.09.18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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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면 월송마을

▲ 월송마을은 돌담과 이영으로 엮어진 가옥들의 모습이 남아있어 농촌의 옛모습을 느낄 수 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을 느낄 정도로 완연한 가을이다. 시원스레 불어오는 가을 바람을 따라 온몸을 흔들어대는 들녘의 곡식들을 바라보며 성전면에 위치한 월송마을을 찾았다.
 
강진읍에서 성전면소재지를 지나 국도 5호선을 타고 영암방면으로 3km 정도를 달리다 보면 우측으로 영풍리 방면을 나타내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표지판을 따라 나타나는 신안마을에서 2㎞정도를 더 달리다 보면 영암과 성전면의 경계인 월각산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월송마을을 만날 수 있다.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 앞에는 4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시골마을의 운치와 더불어 고목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을 곳곳을 둘러보며 마을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을회관에는 마을주민 5명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모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마자 주민들에게 마을 소개를 부탁했다. 반갑게 맞이해주며 먼저 마을 이야기를 들려 준 구찬례(79)할머니는"예전에는 마을 주위에 황장목이 많아 숲을 이루다 보니 황솔 숲 사이로 달이 뜬다고 해서 월송이라 불린다"고 말했다.
 

▲ 400여년의 수명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고목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어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예전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서남쪽으로 먼 산만 보이고 마을 앞 정자나무가 마치 둥근 달 속에 있는 계수나무와 같다고 해서 월송이라는 설도 전해진다고 했다.
 
월송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쯤 전주이씨들이 경기도에서 이거해 입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함양박씨가 해남에서 이거해 입촌했고 밀양박씨, 능성구씨, 김해김씨도 비슷한 시기에 입촌해 현재 마을에는 김해김씨, 함양박씨, 전주이씨, 광산김씨 등 22가구 4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회관에 놓인 칠판에 '가나다'의 한글기초가 적혀있는 종이가 붙어 있어 궁금증을 안고 마을주민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김추임(74)할머니는"일주일에 두 번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한글학교 수업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글씨를 몰랐는데 한글공부를 하면서 내 이름과 우리 집 주소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 2월부터 '찾아가는 여성농민 한글학교'가 월송마을에서 시작되면서 마을주민들이 한글과 산수공부에 한창이었다. 지난해 마을의 70~80대 할머니들은 글을 제대로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8개월 동안 한글학교 수업을 통해 주민들 서로가 도와가며 글공부를 하고 받아쓰기와 글쓰기 연습 등을 거듭해온 결과 현재는 16명의 할머니들 중에 12명이 글을 쓰고 책을 읽게 되었다.
 

▲ 한글학교에 참여하고 있는 월송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배워가는 한글을 되새기며 즐거워하고 있다.
또 지난 5월에는 글쓰기와 가훈 쓰기 등으로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요즘 월송마을 회관에는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이어 마을주민 구창옥(87) 할아버지는 월송마을에 얽힌 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예부터 마을주민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마을에서 영풍리로 넘어가는 달뜸봉재에서 그 해 농사철에 비가 알맞게 올 것인가를 점치기 위해 달맞이를 했다고 한다.
 
이날 달이 뜨는 높이에 따라 비, 바람, 풍년과 흉년을 가름하는데 어찌나 정확했던지 인근 마을주민들이 월송마을 주민들을 지극 정성으로 대접했다고 한다. 또 구씨는 마을회관에서 우측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양끝테샘이라고 불리는 샘에 대해 얘기를 이어 갔다.
 
양끝테샘은 30여년 전만해도 영암 목동에 있는 물을 양끝테샘으로 끌어오기 위해 매년 정월 14일에 물을 가지러 가는 풍습을 행했다고 한다.

월각산 산자락에서 흘러나오는 목동물이 마을에 이로움을 준다고 하여 몰래 목동물을 옹기병에다 담고 솔잎으로 주둥이를 막아 거꾸로 부으면서 마지막으로 양끝테샘에 물을 부었다고 한다.
 
이후 양끝테샘은 태풍이나 풍년과 흉년 등 큰 재앙이 있으려면 샘의 물이 끓어올라 넘치기도 했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월송마을은 돌담과 이엉으로 되어 있는 가옥들의 모습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농촌의 옛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 이후에 가옥들의 모습이 많이 변화되었으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옛날 그대로 자연을 따라 농사를 짓는 순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듯 보였다.
 
마을회관에서 뒤편으로 10분 정도 거슬러 오르다보니 월송저수지를 볼 수 있었다. 햇살이 부서져 은빛으로 출렁이는 저수지가 눈부시게 펼쳐진 가운데 6~7명의 사람들이 낚시와 민물 새우잡이에 한창이었다.

이곳은 새뱅이라 불리는 민물새우가 많아 9월 중순부터는 외지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민물새우 잡이를 즐겨하고 있었다.
 
광주에서 왔다는 김창남(42)씨는"해마다 이곳을 찾아 친구들과 함께 민물새우도 잡으며 여가를 즐기고 있다"며"월송저수지는 숲 속을 휘돌아가는 바람소리와 잔잔한 물결이 함께 어우러져 시골의 정겨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마을을 둘러보는 내내 바람 소리만이 들릴 뿐 세월의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이처럼 세월이 흘렀음에도 월송마을은 언제나 그리워 찾아가고 싶은 고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고추농사 잘되면 친정 가야죠"

-  태국에서 시집온 노군 씨

마을 고추밭에서 일을 하고 있던 노군(43)씨를 만날 수 있었다. 10년 전 태국에서 이곳으로 시집와 살고 있다는 노씨는 마을주민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뛰어났다.
 
마을에 대해 노씨는"마을주민들이 음식을 나눠주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좋다"며"처음 이곳에 와 낯선 환경에 많이 힘들었으나 마을 사람들이 힘이 되어준 덕분에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해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한국말과 음식을 배워가고 있다는 노씨는"책을 통해 한국에 대해 공부를 할 때마다 한국말이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요즘은 5살 된 딸에게 한글공부를 가르쳐 주고 있어 더 많은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노씨는 "파김치와 매운탕도 즐겨 먹으면서 이제는 한국 사람이 다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추 1천여주를 심어 키우고 있는 노씨는 "지난해는 고추가 빨갛게 잘 익어 농사가 잘 되었으나 올해는 고추 농사가 잘 안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며 "가끔 밤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있다"고 수줍은 미소로 말했다.
 
마을에 대해 노씨는 "먼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왔지만 새로운 가족과 이웃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며 "공기 좋고, 조용한 풍경들이 좋지만 무엇보다도 항상 웃으면서 자신을 도와주는 마을주민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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