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400년 역사 마을앞은 바다 대신 푸른 들판
[마을기행]400년 역사 마을앞은 바다 대신 푸른 들판
  • 김응곤 기자
  • 승인 2009.06.24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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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면 논정마을

▲ 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논정마을은 65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형제처럼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며 연일 이어지는 찜통더위는 여름이 찾아왔음을 알리고 있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모내기를 하는 농민들은 한낮의 무더위도 잊은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완도방면으로 길을 따라 신전면소재지를 바로 벗어나면 좌측으로 삼거리가 나온다. 길을 따라 직선길이 아닌 좌측길로 뻗은 군도 1호선을 타고 3km를 가다보면 왼쪽편으로 큰 팽나무가 보이는 곳에 논정마을 입구를 나타내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마을회관에는 5명의 주민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모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 38호 들노래 보존

마을회관에 들어서자마자 주민들에게 마을 소개를 부탁했다. 반갑게 맞이해주며 먼저 마을 이야기를 들려 준 김관순(85)할머니는 "논정마을은 예로부터 전주이씨가 터를 잡고 살아 양반마을로 불렸다"며 "현재도 전주이씨가 많이 살고 서로가 친인척 지간이라 우애가 깊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논정마을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42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효령대군 6대손인 태빈이 선조5년에 해남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풀리면서 논정마을로 옮겨와 정착했다고 한다.

태빈은 마을에 터를 잡아 살 때 노은정이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흘러 후세사람들이 약칭하여 논정이라 부른다고 한다.
 
현재 마을에는 전주이씨, 김해김씨, 해남윤씨, 천안전씨 등 65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대부분 벼농사 위주로 생활하고 깨, 고추 등을 재배하며 거주하고 있다.
 
3면이 바다였던 논정마을은 지난 1962년 민간업자 박홍량씨가 난민정착사업을 실시하며 논정에서 도암면 봉두마을을 잇는 방조제공사를 추진하였으나 자금부족과 개인사정으로 완공하지 못하였다.

이후 이중근씨가 공사를 재개하고 지난 1980년 대규모 간척사업이 완료되면서 해안도로를 배경으로 424ha의 농경지가 조성되어 넓게 펼쳐 있다.
 
논정간척지 조성으로 반농반어 생활을 하던 마을주민들은 95%가 벼농사를 하게 되었고 현재 마을주민 20여 농가가 50ha규모에 미생물과 우렁이를 풀어놓는 친환경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또 논정간척지 231만㎡(70만평) 규모에는 스피커를 이용해 벼에 클래식음악이나 전통국악을 들려줘 자라게 하는 그린음악농법을 실시해 또 다른 농사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논정간척지 조성으로 주민들이 반농반어를 벗어나 벼농사 위주로 생활하게 되면서 논정마을에는 들노래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 마을입구에 위치한 팽나무는 여름철 마을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들노래는 북과 꽹과리 장단에 맞춰 고된 농사일을 위로하고 농민들의 애환을 담아 부르는 농요이다. 들노래는 논에 물을 대는 시기에 부르는 보메기소리, 못자리를 만들때 부르는 못자리소리, 모를 심으며 부르는 모심기 소리 등 6가지로 나뉘어 부른다.
 
예부터 우리농촌마을은 들노래에 맞춰 농사준비를 하고 모내기를 하는 등 고된 농사일을 잊기 위해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생활해 왔다. 이후 농촌인구가 감소되고 전승이 안되다 보니 점차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논정마을에서도 점차 들노래가 모습을 감추게 되자 마을주민 이영학씨는 지난 2000년에 들노래 보존회를 결성하고 전승보전에 나섰다.

마을주민들의 노력으로 논정마을 들노래는 2006년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됐고 해마다 마을주민 50여명이 공연팀을 만들어 청자문화재 행사 때 공연을 하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화합하고 우애가 깊다보니 논정마을에는 또 하나 특징이 있다.
 
바로 집에 대문이 없는 것이다. 마을 전체를 한번 둘러보았으나 60여 가구가 넘는 마을에 대문이 있는 집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주민들은 서로가 친인척 사이이고 정이 두텁다 보니 구태여 담을 치고 대문을 닫고 살 이유가 없고 예부터 마을에 도둑이 없어 도난 사건등과 관련한 범죄사건도 없다고 했다.
 
마을주민 이환재(74)할아버지는 "칠순잔치 때 자식들이 해외여행을 보내줘서 열흘이 넘게 집을 비웠으나 어느 하나 없어진 물건 없이 그대로 있었다"며 "서로가 믿고 살다보니 대문 없어도 걱정 없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논정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주민들이 모여 어울리는 공간이 많아 더욱 우애가 깊다. 마을회관을 비롯해 마을 중간에 위치한 우산각은 지난 1994년에 고 이정수씨가 설치해 마을 주민들이 쉴 공간을 만들었다.

또 지난 2008년에 지어진 갯들소리체험학습관은 주방시설과 노래방 시설이 있어 마을주민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마을입구에 위치한 팽나무 아래에도 쉼터가 있어 여름철에는 마을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마을 인물로는 월남전에 참전해 무궁화훈장을 받은 이준규씨, 도암면장을 역임한 이정상씨, 이태재씨, 신전초등학교 교감을 역임한 이방화씨, 완도 신지초등학교 교감을 역임한 이상규씨, 강진농업고등학 교장을 역임한 이정돈씨, 목포고등학교 교감을 역임한 이신재씨 등이 있다.

 


일손부족하지만 따뜻한 인심있어 고된일 가능

-농정마을 45년 토박이 강순례 씨

마을회관에서 안길을 따라 마을전경을 보기 위해 길을 걷던 중 고추밭에서 고추대를 고정시키고 있던 강순례(65)씨를 만났다. 논정마을에서 45년 동안 거주하고 있는 강씨는 990㎡(300평) 면적에 고추 2천여주를 심어 농사를 짓고 있다.
 
강씨는 "지난해 고추농사가 잘돼 고추 1천근을 수확해 7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렸다"며 "올해 고추농사도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매일 가꾸며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논정마을에서 용석이네 민박집도 운영하고 있는 강씨는 "마을 뒤 1km 거리에 갯벌이 있어 해마다 타지 사람 70여명이 갯벌체험활동을 하기위해 마을을 찾는다"며 "마을에는 6가구가 민박을 운영하며 여행객들을 위해 굴과 꼬막등을 구워먹을 수 있는 바베큐 시설등을 갖추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말했다.
 
이어 강씨는 "논정마을은 조용한 농촌마을 풍경에 비해 주민들이 많고 마을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보니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진다"며 "주민들이 많아도 다투는 일 없이 서로 화합하며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마을이다"고 말했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묻자 "논정마을도 예전에 비해 점점 인구수가 줄고 있어 농촌일손이 많이 부족하다"며 "항상 이웃부터 생각하는 마을 인심 때문이라도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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