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좋고 물 좋아 환경이 살아있는 마을
산 좋고 물 좋아 환경이 살아있는 마을
  • 장정안 기자
  • 승인 2009.02.25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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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도암면 산정마을
▲ 예부터 산과 물이 좋기로 유명했던 산정마을은 세월의 흐름으로 모든 것이 변했지만 따뜻한 인심은 그대로 남아 있어 항상 화목함이 넘치는 마을이다.
공동우물시절 마을주민들 돌아가며 물 지키기도
마을주민들 장수... 6년동안 범죄없어 범죄없는 마을지정 

한동안 포근하기만 했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장롱안에 집어넣었던 겨울 외투를 꺼내들게 만든다. 강진의 들녘도 마찬가지이다. 포근한 봄바람을 맞으며 쑥쑥 자라던 봄 새싹들의 이파리가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에 힘없이 나풀거리고 있다.

세찬바람이 불던 날 찾은 곳은 도암면 강정리 산정마을. 산정마을은 강진읍에서 국도 18호선을 타고 계라삼거리를 지나 완도방면으로 3㎞ 더 가면 우측으로 도암면 지석리 동령마을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표지판을 따라 5㎞를 더 가면 우측으로 나지막한 언덕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가옥들이 모여 있는 산정마을을 볼 수 있다.
 
▲ 마을회관에 2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산정마을에 도착해 마을회관을 찾았다. 마을회관에서는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말소리들이 들려나왔다.

회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20여명의 마을주민들이 모여 마을 일이야기, 이런저런 세상이야기들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을주민들에게 마을소개를 부탁했다. 수많은 주민들 중 김경자(여·61)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산정이라는 마을 이름은 산좋고 물이 좋아 붙여진 이름이다"며 "예부터 산정마을하면 산수가 좋아 다른 마을 사람들이 물을 몰래 퍼가고 우리들은 물을 지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산정마을의 역사는 15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주김씨 16세손인 소축이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에서 이거해 입촌했다.

입촌 후 앞산이 길다하여 산장(山長)이라 불렀으나 후에 산과 마을 앞 정자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이를 강조하기 위해 산정(山亭)으로 개칭했다. 산과 물에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다. 20여년 전 상수도 보급이 부족했던 시절 마을의 공동우물에는 항상 1~2명의 마을 주민들이 우물 물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지켰다.
 
산정마을 물의 맛이 좋아 인근 마을 주민들이 우물 물을 몰래 퍼가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 예전에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던 산정마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우물의 모습이다.
산수가 좋아 90세를 넘긴 어르신이 4명에 달할 정도로 장수 마을이다. 좋은 물과 좋은 공기를 마시다 보니 주민들의 건강도 좋아진다는 마을 사람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은 농지정리로 인해 우물도 폐쇄되고 상수도 보급이 일반화 되면서 그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산정마을의 자랑은 수려한 산수 뿐 만이 아니다. 산정마을은 지난 2006년에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6년동안 단 한건의 범죄도 발생하지 않아 광주지방검찰청에서 선정심의위원회를 거쳐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돼 칠량 연곡마을등과 함께 현판식도 가졌다.

이만큼 마을 주민들의 선한 성품과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고 있다. 산정마을은 90%이상이 미맥위주의 농업이다.
 
예전에는 마늘과 고추재배도 많았지만 인구 노령화와 일손 부족으로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 이에 항상 넉넉지 못한 생활이지만 주민들은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넘치면 서로 나누면서 우애를 나누는게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된 이유이다.

또 주민들은 가족처럼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면서 어느 마을 보다 높은 협동심을 나타내는 것도 산정마을이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이다.
 
또 산정마을은 강진읍에서도 10㎞정도 떨어져 있고 면소재지에서도 5㎞이상 떨어져있는 열악한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2명의 서울대 출신 향우를 비롯해 검사·박사 등의 우수한 인재를 배출해냈다.

마을주민들은 그 이유를 1,800년대부터 마을에 자리하고 있던 교육기관들을 꼽았다. 1,800년대에 마을 입구에 자리한 공동창고 맞은편에서는 서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이었던 김제병씨가 훈장을 맡아 한문과 한글을 위주로 40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또 1933년에는 도암초등학교 부설 덕문학교, 1950년경에는 마을야학, 1959년에는 도암산정초등학교가 개교해 우수한 인재육성에 밑바탕이 됐다.
 
이처럼 마을 인근에 끊임없이 교육기관이 운영된 것에 대해 마을주민들은 높은 학구열이라고 말한다. 미맥 위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은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싫어 항상 자식들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마을의 인물로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나주시법원의 법원장으로 재직 중인 김관재씨, 서울검찰청소속 검사로 재직 중인 김형수씨, 법무부에서 과장으로 재직 중인 김형식씨, 전남대교수로 재직 중인 김승재씨,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인 김용구씨, 아주대학병원 교수로 재직 중인 김재일씨, 강진군청에서 근무하는 김응식, 김국현씨, 강진KT에서 근무 중인 곽영진씨, 한국 수자원공사에서 재직 중인 김경욱씨, 해남경찰서에서 근무 중인 곽일훈씨등이 있다.


◆인터뷰 - 김종순 산정마을 부녀회장

"타지에 나가있는 자식들 힘들지 않게 빨리 경제 나아졌으면"
마을회관에서 마을주민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고 있던 김종순(69) 부녀회장을 만났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마을부녀회의 수장의 역할을 맡아 마을 어르신들 모시기에 열심이다. 

김씨는 "그동안 산정마을은 이렇다할 부업이 없어 항상 넉넉지 못한 살림이었다"며 "하지만 지난해부터 '산정어머니손두부'라는 부업을 시작했었다. 지금은 약간의 문제 때문에 생산은 하지 않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산정부녀회에서 생산해낸 맛좋은 두부를 생산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식들에 대해 김씨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20여년동안 2남2녀의 자식과 홀시어머니를 모셨다"며 "지극정성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이 모두 잘 자란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시골 아줌마가 무엇을 알겠냐만은 자식들이 힘들지 않게 빨리 경제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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