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사람-강진사람 김병국에게-
슬기로운 사람-강진사람 김병국에게-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3.03.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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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흥 선생

다음은 한국금융계의 대 원로인 김진흥(86? 경기도 태생)선생이, 강진출신이면서 역시 경제학계의 거두인 전 서강대 학장인 김병국(78)선생을 위해 쓴 글이다. 이 글은 지난해 발간된 김진흥선생의 수필집 ‘여가(餘暇)’ 에 기록되어 있다.

강진읍 출신의 김병국 전 서강대학장은 우리나라 경제학박사 1호로 오랫동안 금융계와 학계에 봉직해 왔으며 영어에 능통한 대 경제학자다. 현재 현역에서 은퇴해 미국에 거주하며 한국경제론을 영문으로 집필하고 있다. 김병국교수는 본지에 현구 김현구시인에 대한 글과 다산선생에 대한 칼럼을 수차례 기고한바 있다./편집자 주   

 

슬기로운 사람
-강진사람 김병국에게-

김진흥<한무숙재단이사장. 전 한국투자금융 회장 5기 연임>

강원도 강릉시 죽현동에 소재한 오죽헌은 율곡 이이 선생이 탄생한 집이다. 조선조 중종 때 지어진 건축물로 한국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보물165호로 지정되어 있다. 뜰 안에 오죽이 심겨져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모르겠다. 오죽은 죽과에 속하는 본죽의 변종으로 마을에 심는 솜대보다 조금 작고 외피는 자흑색으로 세공의 재료로 많이 쓰이며, 처음에는 녹색이던 줄기가 점차 자흑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잎은 피침형으로 가지 끝에 몇 잎씩 달리며, 6~7월에 녹자색꽃이 피고, 11월경 열매가 익는다.

약60년을 주기로 개화하고 열매를 맺은 후에 말라 죽는 희귀한 식물이다. 오죽은 보통의 대나무와 달리 속이 차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오죽을 깨끗하고 꼿꼿하며 슬기로운 상징으로 아껴 길러 온다. 옛날 우리 선조 중에서는 오죽같은 사람이 간혹 나타나곤 하였다. 매월당 김시습, 오죽헌에서 살았던 율곡 선생, 다산 정약용 선생 같은 분들이 그러한 분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개방. 개화시대에는 오죽과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부패에 물들고 인생관이 그릇되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갈피를 못잡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슬기롭고 멋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를 곁에 두고 있으니 그에게 감사할 뿐이다. 그는 다름 아닌 김병국 박사다. 은행원으로 출발하여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를 역임하였으며, ADB은행에서 수년간 국제금융에도 힘써왔고, 사회. 경제 분야에 대한 저서 출판 등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분이다. 그

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녀들과 함께 살기 위해선지 우리나라를 등지고 미국으로 영구 이민을 떠나셨다. 성품이 온화하면서도 대쪽같고, 선비 정신으로 깨끗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오죽 같은 분이었다. 그는 전남 강진의 대부호의 후손으로 태어나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강진수도원에 전 재산을 기증하고 본인도 입교하여 영세를 받기도 했었다.

그는 어느날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ADB에서 주는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요. 병이 들어도 넉넉히 충당할 만큼 걱정이 없고, 자식들도 모두 미국에서 자리 잡고 살고 있으니 재물이 나에게 더 필요가 없어 천주교에 기증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마음이 어찌나 평화스럽던지요. 편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무숙 선생도 그러했지만, 사회에 알리려고 이런 일들을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내마음의 평화를 위해 행한 일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녀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고향 강진의 수도원에 보관해 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은 환한 회색이 만연하였다. 수만은 사람들이 불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한탕주의의 아귀다툼을 하는 세상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사회에 쾌척할 수 있는, 너그럽고 어진 인사를 행할 줄 아는 분이었다. 한편 그는 수백 편의 영한 논설을 썼는데, 그 모두가 정치. 사회. 경제 분야의 글들로 부정부패를 책하는 의로움과 정의감에 불타오르고 있다.

오죽의 알찬 대속 같은 그의 마음은 정의와 의리, 슬기로 가득 차있었다. 그는 이민 후에도 논설위원으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그는 가끔 고국의 강진 수도원을 찾기도 한다. 그의 생이 이미 수도원에 몸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슬기로운 사람의 이런 높은 덕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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