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 이어져 오고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 남아 있는 마을
세시풍속 이어져 오고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 남아 있는 마을
  • 장정안 기자
  • 승인 2009.02.11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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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군동면 화산리 삼화마을
▲ 화방산이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삼화마을은 정겨움과 푸근한 인심이 살아 숨쉬는 마을이다.
광대바위, 형제바위 마을 굽어보고
기름진 신기평야 시원하게 자리잡아

절기상 입춘이었던 탓인지 날씨는 포근한 봄처럼 따뜻했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모처럼만의 훈풍이었다. 불과 보름 전에 10㎝의 눈이 내렸다는 것이 거짓말처럼느껴졌다. 성큼 다가온 봄기운을 맞으며 찾아간 곳은 군동면 화산리에 속해 있는 삼화마을이었다.
 
삼화마을은 군동면사무소에서 화산리 방면으로 2㎞를 가다보면 우측으로 삼화마을과 영화마을로 가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표지판을 따라 500여m를 더 가면 화방산 아래 아담하게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삼화마을을 만날 수 있다.

삼화마을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마을의 대소사가 열리는 마을 회관이었다. 지난 2005년에 노후화된 기존의 마을회관을 허물고 현대식 건물로 새롭게 개축한 마을회관에는 5명의 주민들이 모여 혈압체크를 받고 있었다.
 
▲ 보건소 직원이 마을회관에 들려 주민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고 있다.
보건소 직원이 방문 진료 중에 마을회관에 들려 주민들에게 무료로 혈압체크를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요즘 시상에 이렇게 참한 샥시가 어딨다요 천사같당께"라는 구수한 사투리를 섞으면서 보건소 직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혈압체크가 끝나자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에 대해 물었다. 올해 90세를 맞은 김인순 할머니는 "예부터 삼화마을은 크게 자랑할 게 없는 평범한 마을이다"며 "그저 사람들 착하고 마을사람들끼리 우애가 좋은 것이 큰 자랑"이라고 마을을 소개했다.
 
이어 마을 뒤편으로 살며시 보이는 광대바위에 대해 묻자 "광대바우는 바우모양이 꼭 광대가 춤을 추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옛부터 집에서 광대바우가 보이면 재물을 잃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말했다.
 
김할머니 옆에 있던 조애순(88)할머니도 말을 거들었다. 조할머니는 "그옆에 형제바우도 있는데 그 바우가 있어서 그런지 예전에는 화산리 일대에 쌍둥이가 많이 태어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삼화마을의 구전되어오는 지명은 이뿐만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마을 뒤편산에 위치해 있으며 마치 사람의 목 모양과 닮았다고 해 붙여진 모가지(맹목)바위와 마을 뒤편 화방마을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등성이로 예전에 말무덤이 있다하여 붙여진 몰매등, 마을의 동쪽에 위치한 논의 이름으로 아궁이의 흙과 재를 거름으로 사용한데서 붙어진 골논 등이 아직도 주민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향토적인 지명이다.
 
오래전부터 전설을 간직한 화방산 정상부근에 자리한 광대바위는 마을의 큰 자랑거리이다. 이에 마을에서 화방산정상까지 오르는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고 등산로도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오르기 편하게 되어 있다.
 
등산로 길이는 왕복 4㎞로 가족들이 오붓하게 오르기에는 안성맞춤인 코스이다.
 
▲ 마을회관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는 해주오씨 제각의 모습이다.
마을주민들에게 마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마을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을 안길에 접어들자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눈에 띄었다. 마을 안길 양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돌담길이 그것이었다.
 
간혹 일부마을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군동면 삼화마을과 같이 50여m정도로 길게 세워진 곳은 없었다. 삼화마을은 현대문명에 사라져가는 한국의 향토적인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마을 돌담길을 따라 10여분을 올라갔다. 10여분을 오르자 울창한 나무로 둘러쌓여 있는 한 건물이 나타났다. 마을 최초입촌 문중인 탐진 최씨일가에 이어 터를 잡은 해주최씨 문중의 제각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은 탓에 문은 잠겨 있었지만 매년 음력 2월과 3월, 10월에 문중제를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해주최씨 제각을 본 후 마을회관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해주오씨 제각을 찾았다. 해주오씨의 제각도 사람은 살고 있지 않아 문이 잠겨 있었지만 문중사람들이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제를 모신다고 한다.
 
이밖에 화방마을 방면에 해남윤씨제각도 있어 20여호 남짓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소규모 마을치고는 적지 않은 수의 제각이 모셔져 있었다. 이 이유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삼화마을이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의 자리에 위치한 삼화마을에는 다양한 세시풍속도 많다. 이월에는 하드렛날이라고 해서 온 주민이 콩과 칡을 먹고 유월에는 유두절이라고 해서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모여 술과 먹거리를 나누며 하루를 지낸다. 또 칠석과 백중절이 있는 칠월에도 마을회관에서는 걸쭉한 마을 잔치가 벌어져 마을주민들 간에 화합을 다지고 있다.
 
마을주민들간 우애가 깊은 삼화마을 출신으로는 군동면 제 14대 면장을 역임한 고 최홍석씨와 신전·마량 파출소장을 역임한 오양호씨, 강진군청에서 근무하는 최종렬씨와 최종남씨, 예비군 면대장을 역임한 오용원씨, 청주교도소 부장을 지냈던 최종선씨 등이 있다.

인터뷰 - 오영례 할머니

"주민들 상부상조하며 단합심 좋아"
마을 회관에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오영례(78)할머니를 만났다. 오 할머니 연세는 70대 후반이었지만 너무나 정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최근 생활에 대해 오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농사를 안짓다 보니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먹고 살고 있다"며 "혼자살아 때론 적적하기도 하지만 자식들에게 큰 폐를 안끼치고 사는 것이 어디냐"고 웃었다. 이어 오 할머니는 "마을할머니 대부분이 삼화마을과 가까운 곳에서 시집을 온 경우이다"며 "나역시 삼화마을이 고향이고 삼화마을에서 지금껏 살다보니 마을 주민들이 남같지 않고 가족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마을에 대해 오 할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삼화마을은 큰 마을은 아니었고 벼농사 외에는 다른 농사를 한 적이 없는 마을이다"며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단합심이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오 할머니는 "요즘 경제가 어려워 타향에서 직장생활하는 자식들이 너무 힘이 들것 같다"며 "올해는 경제가 좋아져 자식들이 편하게 살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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