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유학자 분류
다산의 유학자 분류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3.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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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고전연구소장 양광식

○ 유학자의 정의
유학이란 유학을 연구하는 학자인데 예법과 음악 박애와 정의를 숭상하고, 마음을 다하여 남을 위하는 충과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서 남의 처지를 헤아려주는 세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중과 변치 않는 용의 도를 제창하여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를 강조한 것이다. 다산이 물은 순서에 따라 나열해 본다.

다산은 황해도 곡산의 부사(종3)로 있을때 향교에서 선비를 뽑는 시험을 주관하였다. 그때에 「공자의 학문을 배우는 이유에 대하여 답을 써내라」는 제목을 출제하였다. 그 내용중 유학자의 정의를 내린 것은 주례의 천관편 (6조의 으뜸인 이조에 해당되고 국정을 총괄하고 사무를 맡음)에 있는 이도득민 즉 도리를 실행하여 백성의 마음을 얻는 일을 선비라 일컫는다 라고하니 선비라는 명칭이 위대하지 않는가하고, 유학자에 대한 학설은 예기의 유다의 가르침에 맞는 언행을 논한 유행편의 17장속에 자세하다」라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또 말하되 유교의 도리는 마땅히 어질고 간사함이 없어야 하는데 논어에는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었고, 유가의 전통이나 가풍은 한계가 없는데도 역사나 전기를 기록한 곳에는 산동출신이냐  하북출신이냐로 나누었다.

○ 서경의 유학진흥
한나라의 유방(BC256-195)은 유자의 노자를 썼지만 유가의 전통과 기풍은 서경의 지역에서 크게 떨쳤고, 위나라의 조비(187-226)는 궁궐만 세웠는데도 환란이 건중에서 일어났다.
양웅의 인재등용

양웅(BC53-A918)은 이단에 쏠렸는데 유학자를 존경하자는 논의를 하여 재주꾼을 등용케했고, 급암(-VC112)은 정직한 사람이라고는 불렀지만 유학자를 훼방쳤다는 명칭이 두고두고 전해온다.

○ 비난하고 조소하는 지칭어
유생을 업신여기는 말인 수유와, 아주 완고하여 쓸모없다는 선비인 부유와, 식견이 천박한 선비인 비유와, 융통성 없고 실정에 어두운 유생인 구유에게는 비난하고 조소하는 단서가 많다.

○ 따돌리거나 물리쳐 내치는 지칭어
입으로는 사랑과 정의를 말하면서도 행실은 도적과 같은 선비인 도유, 식견이 얕은 선비인 천유, 지식이 얕은 유생인 이유, 쓸데없는 주장만하는 공유를 따돌리거나 물리쳐 내치는 일은 한 둘이 아니다.

○ 유학의 종사인 맹자
안회(521-490BC), 증삼(505-436), 공급(492-432), 맹자(372-289)는 모두다 유학자의 스승으로 삼아 본받을만한데 학식이 순수하고 올바른 학자라 한 이는 맹자이다.
학식이 깊은 숙손통
한나라 초기때 문신인 수하, 초나라 사람인 육가, 정나라 사람으로 법가의 비조인 신불해(BC337), 제나라 사람으로 병법가의 비조인 손무는 유학자라고 하였지만, 고금의 경전에 통달하여 학식이 넓고 깊은 학자라 한 이는 설나라 사람으로 한나라 고조때에 나라의 길흉에 관한 의식인 전례를 만든 숙손통을 손꼽는다.

한유의 주장
시조와 산물은 당나라의 고조인 이연(566-635)때에 왕성했지만 한유(768-824)가 주창한 「덕이 있는 사람은 남을 감화시켜 따르게 할 수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고 한 것만 못하다」
소식의 문호
성리학 즉, 도덕과 학문은 정호(1032-1085), 정이(1033-1107),소옹(1011-1077)보다 융성하게 한적이 없는데 소식(1036-1101)만이 문호를 별도로 이룩하였다.
어리석음과 덕망
어리석은 유생이라는 무유라는 말은 어느 책에서 나왔으며 나이가 많고 덕망이 있는 학자라는 기유라는 말은 과연 어떤 사람을 지적하였는가?

진덕수의 심경
양신(1488-1559)이 여러 사람들을 평론하되 주희(1130-1200)가 한 말들은 드러내서 밝혔어도 이단에 대한 학설은 명나라 말년에 가장 많았고 감숙성 북부에 있는 돈황석국 사원을 353년에 개착한 영향을 받지 않는이는 실제로 경전석문 30권을 서술한 육덕명(550-630)을 으뜸으로 쳐야하지만 송나라 진덕수(1178-1235)가 지은 심경을 유교의 경전중에서 가장 높이고 공경하는 이유를 지적해서 말할 수가 있는가? 라고 조목조목 언급하였다.
이상은 사고, 인물, 서적 등을 인용하여 의미를 제시해 두었는데 한번 읽고서는 무슨뜻인지 마음에와 닿지 않을 내용들이다. 필자가 결론을 맺어본다면 책은 심경을 읽고, 도리를 실행하여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하며 맹자를 유학자의 스승으로 삼아 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큰마음 기르는 방법을 시사한 요점이니 함께 갈고 닦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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