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호)독자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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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진신문
  • 승인 2003.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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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방문

가정방문
           임은주 강진북초등학교 교사

많은 사람들에게 한 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교사들에게 있어 한 해의 시작은 3월로 느껴질 때가 많다.

3월에 해야 하는 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정방문이다. 아무리 학교일과에 쫓기더라도 1년 동안 학급운영을 위해서 먼저 아동들의 실태파악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는 가정방문에 부작용이 있다고 하여 언제부터인가 없어져 버렸지만, 농촌의 아이들에게는 한번이라도 선생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 해주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혹시라도 선생님이 시간이 늦었다고 자신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을 때는 언제 다시 올 것이냐고 물어서 확답을 받아야만 귀찮게(?)하지 않을 정도이다.

지난해에도 여느해처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마을로 가정방문을 갔다. 많이 윤택해진 교사 생활 덕분에 승용차에 선두 아이를 태우고 동네 어귀에 도착하여 가까운 집부터 방문을 했다. 80년대 초에 가정방문을 가면 지푸라기 꾸러미에 쌓여져 아직도 어미 닭의 온기가 남아있는 달걀을 손님맞이용 선물로 내어주시는 부모님도 계셨고 지난 설에 만든 유과나 약과를 내어놓으시며 기다려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요즈음은 농사철이 일정하지 않고 시설하우스 재배를 하느라 일년 내내 낮에 한가하게 집에 계시는 부모님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나이가 많이 드신 조부모님이나, 집을 지키는 개가 오는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고 오후 내내 돌아다녀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부모님이 계신 집을 갔을 때는 횡재라도 한 것 같아 다음 집을 가야하는 데도 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일년 중의 한번 뿐인 만남의 정을 돈독히 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서도 집의 마당과 마루의 모습, 아이들이 공부하는 방을 들여다보면, 그 아이의 정서 상태나 생활정도, 부모님들의 성격, 생활태도 등을 금방 알 수 있다. 선생을 오래하면 반 귀신이 되고, 멍석을 깔아도 된다고 웃으면서 농담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싶다.

그런데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유난히 결손가정이 많았다.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가 남매를 데리고 사는 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엄마가 없는 집의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옷가지, 주방의 그릇,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가 뒤엉켜 발을 딛고 들어설 틈이 없었다. 아이가 공부에 흥미가 없고, 학교에서 늘 우울하기에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이 광경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핑 돌았다. 아빠는 공사장에서 늦게 오시고 바로 위 학년인 누나와 끼니를 해결하자니 오죽했으랴? 이런 좋은 세상에 얼굴이 누렇게 떠있고 늘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탓인 것 같았다.

양친 부모가 없고 극빈 대상자가 되어야 결식아동으로 선정되어 혜택을 받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결식아동이 바로 이 아이인 것 같았다. 자리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학교에서는 웃지도 않고 늘 우울하더니 집에 선생님이 오는 것이 좋았던지 아빠 이야기, 누나 이야기를 하면서 밝은 모습을 보여주어서 더없이 고마웠고 서로 많이 가까워졌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퇴근을 하면서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올해 학급 경영의 목표설정에 방향이 보였다.

 멍들어 있는 아이들 마음에 사랑을 심어 주어야지. 또한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줄 아는 아이들이 되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학급 운영 목표를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아이들 마음에 사랑을 심어주자” 로 정하고서, 3월부터 당번이 되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끼리는 서로 칭찬하도록 칭찬-카드제를 실시하고, 우정의 편지를 주고받게 하였으며, 생일축하회를 열어주고, 모둠별 협동 학습을 강조함으로써 목표에 도달하고자 일년 동안 노력했다.

IMF로 가정이 파괴되어서 할머니가 두 손자를 키우시는 집이 있는데 학예회 날 학교에 오셔서 손주녀석이 서울에서 내려올때만 해도 사람이 될까 싶었는데, 이제야 자기 손주가 된 것 같다고 하시면서, 집에서도 할머니께 잘하고, 아주 명랑해졌다고 기뻐하시고, 작은 학교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손주들의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져준 것같다고 하셨다.

 얼마만큼 아이들 마음에 사랑을 심어주었는지 알 수없지만, 할머니의 말씀에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상처로 얼룩진 우리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많이 사랑하면서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로 자라주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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