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위하여
희망을 위하여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3.0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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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대 강진군 농민회장

우유에 칼슘이 많습니다. 칼슘을 많이 섭취하면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을하더군요.
우유가 살을 찌개 한다는 일상적인 생각을 뒤집는 연구결과라고 합니다. 농민회장 이기 전에 젖소를 키워 생활하는 농사꾼의 한 사람으로써 경영여건이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나온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다방에 가서도 우유만 마십니다. 오이 재배하는 농민회 사무차장이 식당에 가면 ‘오이 무침 없어요’라고 버릇처럼 말합니다. 참 우습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짠하기도 합니다. 농민회 회의를 하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시중 나락 가격입니다. 각 지역에서 나온 사람들이니 신문이나 텔레비전보다 소식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간부는 정부 공판만 말고 전량을 식솔들과 지인들에게 방아찧어 시중보다 3천원 정도 비싸게 판다고 합니다. 거기에 끼어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한정된 양을 소화하기에도 버거우니 안타깝습니다.

우리 모두 농민운동 하는 한 사람의 활동가 이기 전에 한 살림을 책임지는 경영의 주체인 것은 두말 할 나위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것만을 강조하면 다른 활동을 못하게 되니 개인적으로 얼마나 갈등이 많겠습니까? 우유를 하루에 두 번 제 시간에 짜주지 않으면 하늘이 두쪽 납니다. 방울 토마토 오이 버섯등 일정 시간에 일정 작업을 해주지 못하면 정말 큰입납니다.

 그 일을 제쳐두고 나올라 치면 발걸음을 잡는 것은 마누라의 눈치와 바가지 뿐만은 아닙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작물과의 의리와 약속을 말하면 과장된 표현일 지 모릅니다만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의 작물과 짐승에는 ‘돈’으로 한정 지을 수 없는 그 무엇, 가슴 밑 바닥에서 올라오는 무엇이 있습니다.

농민회 활동을 하다보면 또 어려운 것이 ‘그런 다고 농업이 바뀌고 농민 살길이 열리냐’라고 반문하는 주변분들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이런 분들에 대해서 어떤 농민회원은 그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직불제다 농협 나락값이다 올려주지 말고 그대로 살라고 해야 한다고 화내면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변화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겨울강물이 속으로 흐르는 것과 같이 면면히 이루어 지는 것이고 운동은 몇몇이 나서서 해결해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여럿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작년에 서울에서 약 15만명이 집회를 했습니다. 강진에서도 약 500여분이 동참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내년에 직불제가 1ha당 70만원으로 올랐고 제한 면적도 5ha로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 집니다. 강진은 작년 겨울 두 번의 트렉터 시위로 도지원금 군지원금 합쳐 약 12억 7천만원을 확보했습니다. 농가당 평균 15만원 정도 지원됩니다. 이것도 조그마한 성과입니다. 변화는 현상이 아니라 관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변화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큰 변화도 아무 변화가 아니게 보이지만 변화를 보는 사람은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작물의 잎사귀 색깔을 보고 영양상태를 알아차리고 짐승의 눈 상태와 혓바닥 건조정도를 보고도 병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농민입니다. 
농사도 그렇고 활동도 그렇고 계획에 흡족한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성과를 내일로 가는 디딤돌로 여기고 ‘여기부터 지금부터 나로부터 시작이다’ 이런 생각이 있다면 후회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변화를 느끼고 이것을 소중히 가꾸어 가는 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이 나라에도 희망이 있고 우리 강진에도 희망이 있고 우리 농민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우리의 땀과 정성을 먹는 농산물과 같습니다. 가꾸기에 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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