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성씨<1> - 진주강씨(晉州姜氏)
강진의 성씨<1> - 진주강씨(晉州姜氏)
  • 김철 기자
  • 승인 2003.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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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의 시조는 고구려시대 강이식(姜以式)장군이다. 을지문덕장군과 함께 수나라 양제가 113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할 때인 612년 전투에서 큰 공로를 세웠던 명장이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후손의 일부가 남하하면서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다. 진주라는 본관은 통일신라 강진(姜縉)씨가 진주에서 터를 잡은 것으로 유래되고 있다. 그후 30여개가 넘는 파조가 있는 진주강씨는 크게 박사공파, 은렬공파, 인헌공파, 관서공파, 소감공파등 5개로 나뉘어졌다.

귀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민첨(民瞻)장군이 은렬공파의 시조이고 가장 많은 파조를 거느린 박사공파는 문과 국자 박사를 지냈던 계용(啓庸)씨가 시조이다. 문무를 겸비해 귀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웠던 강감찬장군은 인헌공파의 시조이고 사재소감을 지냈던 위용(渭庸)씨가 소감공파, 관서대장군을 지냈던 원로(元老)장군이 관서공파의 시조이다. 시조인 강이식장군과 파조와 연대에 차이가 있다. 인헌공파와 은열공파는 380여년 박사공, 관서공, 소감공은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후손임은 확실하나 계촌(系寸)이 될 수없어 족보를 따로 발간하고 있다.

강진에 진주강씨가 처음 입촌한 것은 1423년 강전(姜詮)씨가 성전면 금당리에 정착하면서 시작된다.

감찰어사까지 지냈던 강씨는 강진군 금여리에 정착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금여리는 금당리의 예전명칭이다. 실제로 성전면 금당마을과 거목마을에 자손이 20대를 넘긴 주민들이 살고 있고 이를 입증하고 있다. 성전면 금당마을에는 진주강씨 문중에서 만들어준 열녀문이 있다. 17세에 금당리 강덕혼씨에 시집와 24세에 남편이 병으로 죽게되자 3개월간 남편곁에서 통곡을 하다 자결한 창령성씨의 혼을 기리는 열녀문이 위치해 있다. 강진지역에 400여 가구가 살고있는 진주강씨는 박사공파에서 나온 양희공파와 공목공파가 주를 이룬다.

신전면 송촌문중 입양선조는 예(豫)씨이다. 1530년에 태어난 예씨는 통덕랑벼슬에 올랐고 효자로 강진읍지의 효행록에 등재될 정도였다. 예씨는 친구가 고금도에서 귀향살이를 할때 이를 면회하러 강진을 지나다 송천 모가동(毛加洞) 선산에 자리를 잡고 정착하게 된다.

신전면 송천마을에는 예전 진주강씨 자자일촌 마을이였고 현재는 16세손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자손들이 모금한 1억여원으로 새로 완성된 문중제각인 송흥제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송흥제는 각종 족보등이 보관돼 마을주민 강대홍(00)씨가 관리에 나서고 있고 매년 10월 13일 제사를 모시고 있다.

옴천에 처음 입향한 선조는 강창회(姜昌會)씨이다. 호는 초당이며 영암에서 이거해 옴천면 봉림으로 이거해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에 정진해 후학양성에 전력을 다했다. 성리학과 도학에 통달했다는 강씨의 후학양성은 후대를 이어져 나갔다. 초당 강창회(1789~1859), 지헌 강진수(1845~1926), 봉은 강대홍(1867~1946)선생이 기거하며 3대가 교육에 전념했다. 선생들의 교육을 받고난 문하생들이 치적을 기리는 봉림단을 만들어 제향을 올리고 있고 옴천면 봉림리 연동마을에서 남아있다.

마량면에 살고있는 진주강씨는 두계파로 이루어져 있다. 3세손인 사첨(師瞻)이 3형제를 두고 큰아들 창부는 양희공파를 둘째인 창귀는 통정공파로 분파되게 된다. 향희공파 7대손인 전(詮)이 성전면 금당으로 터를 잡아 입향했고 그후 16세손인 인걸(仁傑)이 칠량으로 왔으며 20세손 시0이 1680년 마량으로 입향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통정공파로 15대손인 시견이 마량으로 입향해 13대를 이어오고 있다.

도암면 항촌리 옥전마을에도 진주강씨가 살고 있다. 박사공파 24세손 영계(永桂)씨가 옥전마을에 입향해 손을 번성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강진의 각 지역에 산발적으로 선대들의 묘소가 관리중이고 신전면 송천마을에 박사공파 12세손 예씨와 14세손 사룡, 15세손 신후, 신종, 태종씨의 묘소가 위치해 있다.

군립도서관에는 지난 98년 마량면 원로리에 사는 강원두(80)씨가 기증한 진주강씨 족보가 민속자료실에 놓여있다. 양희공파라고 밝힌 강씨는 “양해공파보다 윗대인 어사공파의 구보를 기증한것이다”며 “집에 두는것보다 영구적인 자료가 될것같아 기증하게 됐다”고 밝혔다.

진주강씨의 사회적인 활약은 두드러진다. 박사공파 26세손으로 88년 국무총리를 지내고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냈던 강영훈씨, 광주 남구 국회의원을 맡고 있는 새천년 민주당 강운태의원, 강성구의원, 강숙자의원, 4선의원인 강창희의원, 한나라당 강창성의원, 강인섭의원들이 모두 진주강씨이다.

강진출신의 진주강씨는 서울에서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성봉씨, 부산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강대하씨, 하나은행에 근무하는 강영회씨, 마량 원포리 출신으로 서울에서 회계사로 근무하는 강명구씨, 칠량출신으로 광주에서 변호사로 활동중인 강병호씨등이 있다.




공석중인 진주강씨 종친회장일을 도맡아 활동하고 있는 강영제(69·신전면 송천리)씨를 만났다.
강씨는 새로만든 문중제각에 대해 가장 먼저 말을 꺼냈다. 강씨는 “6년전부터 100여명이 넘는 종친들이 한푼씩 모아서 지난해 11월 완공한것이다”며 “신축제각을 완성해 자손들이 조상에 대한 숭조정신을 새롭게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대조 사진과 족보를 가지고 자세한 설명을 하던 강씨는 종친회에 대한 설명도 빠트리지 않았다.
정씨는 “30여년전 종친회가 있어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으나 그후 종친회의 활동이 드물었다”며 “2년전부터 종친회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되면서 지난해 발기인대회를 갖고 활동을 준비하고 있어 곧 모임이 결성될것이다”고 강조했다. 농협 신전분소장을 지내고 퇴직한후 10여년째 문중일을 돌보고 있다는 강씨는 “시제를 모셔보면 예전보다 숫자가 많이 줄어든 30여명이 참석하고 있다”며 “젊은층이 조상에 대한 무관심이 애석하다”고 꼬집었다.
박사공파 23대손에 해당한다는 강씨는 “진주강씨는 박사공파, 인헌공파, 은열공파에서 나눠진다”며 “강진지역에 양해공파와 공목공파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강씨는 “자식들을 위해 제사요령과 선대조상들의 이름이 적힌 집례홀기라는 책을 직접 만들어 나눠줬다”며 “시대적 흐름이 예법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은 힘들지만 조상이름과 기본적인 예법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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