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대한 몇가지 오해
박물관에 대한 몇가지 오해
  • 강진신문
  • 승인 2002.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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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일(강진청자자료박물관 학예연구사 겸 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
최근 언론을 통해 강진청자자료박물관의 문제점이 몇가지 지적된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고무적인 일이지만 박물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지적도 없지 않았다.

청자자료박물관의 가치가 반드시 국보급 청자가 있어야 한다거나, 박물관에서 깨진 사금파리정도를 전시하고 있다는 식의 계량적 시각은 청자박물관의 발전을 위해 제고해야 할 부분이다.

박물관(Museum)하면 일반인들은 오래되고 값비싼 유물이 늘어져 있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방송의 “진품명품”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유물의 역사성보다는 감정가액에 관심을 갖는다.

“어제 방송프로에 1억짜리 하얀색 도자기에 푸른 용이 그려있는 항아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유물의 명칭이 “백자청화용문항아리”라는 것과 제작 시기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유물값이 1억이라는 사실만을 기억한다. 이것이 우리가 문화재를 바라보는 관점이며, 우리의 문화재가 처한 현실이다.

유물이 왜 중요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15세기 백자의 雪白色(하얀 눈과 같이 맑은 백색)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 일뿐이다. 이와 같은 문화재의 무관심이 유물의 역사와 제작과정을 배울 기회와 가르칠 공간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사실과 유물의 아름다움과 완결성만을 강조하는 명품 위주의 기존 박물관 전시에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국제박물관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에서 “박물관은 연구와 교육, 향수의 목적을 위해서 인간과 인간 환경의 물질적인 증거를 수집, 보존, 연구, 전달, 전시하며, 사회와 사회의 발전에 봉사하고, 대중에게 공개되는 비영리적이고, 항구적인 기관”이라고 내린 정의는 한 번 되새겨 볼 필요성이 있다. 동물원이나 수목원이 박물관의 하나의 유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와 같이 박물관의 정의와 사업을 먼저 언급한 것은 올바른 이해 없이 박물관을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립박물관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자기 박물관만 5곳이 국비 지원을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건물이 완성된 이후의 전시물이나 전시체계를 갖출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세우는 곳은 하나도 없다. 단지 건물을 만들어 놓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국비나 도비를 받아 건물 세우기에 모든 정력을 쏟아 붙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은 일시적인 시설이 아닌 영구적인 시설로 시작단계부터 철저한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단기간에 국보급의 유물을 살 수 있는 박물관은 전 세계에 하나도 없다. 우선 수 십억대인 국보급 유물이 한정 없이 발견될 수도 없고, 그러한 가격의 유물을 서슴없이 구입할 수 있는 능력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수집과 전시는 영화와 연극에 줄거리가 있듯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만드는 역할을 박물관의 꽃이라는 “학예연구사(큐레이터)”가 맡는다. 전시회를 기획하며 전시물의 순서와 위치에 대하여 고민한다.

이와 같이 하나의 줄거리를 만드는 것은 유물의 특징을 부각하면서 쉽게 이해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박물관에서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예연구사를 뽑아 박물관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의사의 전공을 이야기하면서 학예연구사의 전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치과대를 졸업한 의사를 산부인과에 근무시키는 병원은 없다. 그러나 박물관에서는 미술사, 고고학, 보존학 등 다양한 연구자가 추진할 일을 세분하지 않고, 다양한 전문성을 요하는 박물관 사업에서 1명의 연구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국 박물관의 기능을 가로막는 일이다. 다양한 박물관 사업과 유물의 성격에 따라 세분화된 연구진이 확보되어야만 박물관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강진생활 6년 동안 수 없이 많은 학계와 도예가들을 박물관에서 만났다. 나의 책상에만 1000장의 명함이 들어 있다. 그리고 많은 방송과 지면에서 이 박물관에 대한 장점만을 전해 준 것이 사실이다. 이번 문제점 지적이 일회적인 폭로보다 앞으로 나아갈 전망과 문제해결에 대한 깊은 성찰이 강진군이나 전남도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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